"난 지금 제대로 된 고백을 해본 적이 없어."
수현이 카페 테이블 위 라떼를 무심히 저으며 말했다. 창밖으로 초여름의 햇살이 쏟아지는 오후, 나는 대학 시절 친구와의 만남에서 이런 고백을 들을 줄은 몰랐다. 모두가 부러워하던 그녀의 연애 히스토리가 모두 거짓이었다니.
"무슨 소리야? 너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남자친구 있었잖아. 그 연애 대장정이 어떻게 고백 없이 가능하지?"
수현의 말에 달콤한 카페인 향기가 갑자기 쓴맛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게 내 비밀이야. 내가 늘 고백을 기다리는 사람이었을 뿐, 한 번도 내가 먼저 고백한 적은 없어. 상대방이 먼저 마음을 드러내게 만드는 게임을 해왔던 거지."
그녀의 목소리에서 묘한 공허함이 느껴졌다. 커피잔을 감싼 그녀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어. 처음으로 내가 고백하고 싶은 사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그녀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는 오랜 친구의 얼굴에서 전에 본 적 없는 취약함을 발견했다.
"근데... 어떻게 고백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항상 받기만 했으니까. 그 사람은 절대 먼저 고백하는 타입이 아니야."
나는 수현의 고민을 듣고 조언을 건넸다. 진심을 담아 그냥 말하라고. 하지만 그녀는 머리를 흔들었다.
"너무 두려워. 내가 항상 게임처럼 연애를 해왔잖아. 상대가 나에게 빠지게 만들고, 고백을 유도하고... 그런데 이번엔 이기고 싶지 않아. 지고 싶어."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수현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늘 고백했어. 생각보다 쉬웠어. 그냥 '좋아해'라고 말했을 뿐인데, 온 세상이 달라진 것 같아."
나는 웃으며 축하 메시지를 보내려다 그녀의 다음 문자를 보고 멈췄다.
"근데 그 사람은 거울 속의 나였어. 평생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연기하느라 정작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거야. 이제야 진짜 연애가 시작된 것 같아."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흐릿하게 번졌다. 누군가에게 고백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진정한 연애란, 타인이 아닌 자신과의 끝없는 대화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