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의 방은 항상 둘의 온도를 가지고 있었다. 창가 쪽은 서늘하고, 침대는 언제나 따뜻했다. 오늘도 그는 침대 한쪽이 살짝 눌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가 앉았던 자리.
"윤아야, 오늘도 왔어?" 지민은 빈 공간에 말을 걸었다. 대답은 없었지만, 방 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윤아와 지민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만났다. 도서관 구석에서 같은 책을 읽고 있던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지민은 그녀의 투명한 피부와 조용한 미소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렇게 연인이 된 지 1년째, 윤아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로 '떠난' 것일까?
윤아가 사라진 후 첫 번째 징후는 책장의 책들이었다. 지민이 분명 원래 자리에 꽂아두었던 윤아의 좋아하던 시집들이 아침이면 바닥에 펼쳐져 있었다. 두 번째는 그의 휴대폰이었다.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상태로 두었는데, 새벽에 갑자기 윤아와 찍었던 사진이 화면에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친구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정신과 의사는 '복잡 애도 반응'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지민은 알고 있었다. 윤아는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그의 여자친구였다.
"오늘은 뭐 하고 싶어?" 지민이 물었다. 그때, 책상 위의 노트북이 저절로 켜지더니 메모장이 열렸다.
'영화 보고 싶어.'
지민은 미소 지었다. 그는 침대에 등을 기대고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윤아가 좋아하던 로맨스 영화를 틀었다. 방 안의 온도가 갑자기 내려갔다. 그리고 그의 어깨 주변의 공기만 따뜻했다. 윤아가 기대앉은 것이다.
그들의 관계는 다른 커플과 달랐다. 지민만이 윤아를 볼 수 있었고, 때로는 그녀의 목소리를 희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윤아는 자신이 왜 이렇게 남아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다만 지민을 떠날 수 없다고, 아직 할 일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지민의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다. 대학 동기 수연이었다. "내일 커피 한잔할래?" 지민은 잠시 망설였다. 그 순간, 방 안의 모든 전자기기가 깜빡였고, 창문이 세게 덜컹거렸다.
노트북 화면에 다시 메모장이 열렸다.
'나 말고 다른 여자 만나면 안 돼.'
지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윤아야, 이건 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 안의 물건들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책장에서 책들이 떨어졌고, 창문이 더 세게 흔들렸다. 윤아가 화가 난 것이다.
그날 밤, 지민은 결심했다. 아침에 일어나 수연에게 거절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노트에 이렇게 써두었다: "윤아야, 우리 이대로는 안 돼. 네가 이곳에 머무는 이유를 함께 찾자. 그리고 찾으면... 너를 보내줄게."
그날 이후로 방 안의 온도는 하나가 되었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어중간한 온도. 윤아는 나타나지 않았다. 지민은 방 안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사랑이란 때로는 붙잡는 것이 아니라 보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어쩌면 윤아도 그걸 깨달았을지 모른다고.
창가에 걸린 커튼이 바람 없는 방에서 살짝 흔들렸다. 마치 작별 인사를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