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아이돌 지훈이 무대에서 쓰러진 그날, 나는 그의 비밀 남자친구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스포트라이트가 그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팬들의 비명이 공연장을 채웠을 때, 내 심장은 깊은 심해로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연인 사이인 거 맞죠? 당신이 그의 남친 맞죠?" 병원 복도에서 기자들이 내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훈과 나의 3년 관계는 철저히 비밀이었다. 그의 소속사는 아이돌의 연애, 특히 동성 연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금기였다.
대기실에 들어가니 지훈이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었다. "미안해, 과로였어. 너무 무리했나 봐." 그가 속삭였다. 나는 그의 축 처진 어깨와 눈 밑의 다크서클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그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매니저가 투여했다는 영양제 주사 자국이 그의 팔에 선명했다.
"그만하자. 이제 공개하자." 내가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팬들이 날 버릴 거야. 소속사는 계약 위반으로 날 고소할 거고."
그날 밤, 나는 그의 휴대폰에서 우연히 녹음 파일을 발견했다. 호기심에 재생했다. "오늘부터 주 3회 연습 시간을 추가한다. 살 3kg 더 빼고, 새 안무는 내일까지 완벽하게 외워와." 소속사 대표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지훈의 흐느낌이 들렸다.
다음 파일. "이거 마셔. 밤새 연습해야 하니까." 매니저의 목소리. "이게 뭐예요?" 지훈이 묻는다. "그냥 마셔. 너 이번 활동 성공하지 않으면 그룹 전체가 망한다고 생각해."
내 손이 떨렸다. 화려한 무대 위 빛나는 아이돌의 모습 뒤에 가려진 어두운 현실이 선명히 보였다. 지훈은 아이돌이기 전에 그저 스물넷의, 꿈 많던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 청년은 지금 무너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결정했다. "나 기자회견 열 거야." 지훈의 눈이 커졌다. "안돼! 제발..."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걱정 마. 우리 관계에 대해서가 아니야. 네가 겪고 있는 일에 대해서야. 그 녹음 파일들."
일주일 후, 모든 언론이 아이돌 산업의 그림자에 대해 보도했다. 지훈의 소속사는 조사를 받게 되었고, 불법 약물 투여와 인권 유린 혐의로 대표와 매니저가 체포되었다. 그리고 지훈은... 처음으로 진짜 미소를 지었다.
"남친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널 지키고 싶었어." 내가 말했다. 그는 내 손을 꼭 잡았다. 우리의 관계는 여전히 비밀이었지만, 이제 지훈은 자유로웠다. 아이돌이란 화려한 가면 뒤에 숨겨진 진실이 밝혀진 그 순간, 우리는 언젠가 모든 가면을 벗을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