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플레이어는 대표님입니다." 나는 이 말을 최대한 무표정하게 건넸다. 회의실 테이블 위에는 다채로운 보드게임이 펼쳐져 있었고, 그 주변으로 우리 회사 임원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불과 한 시간 전, 우리는 분기별 실적 보고를 위해 이 자리에 모였었다. 그러나 대표님이 갑작스럽게 서류가방에서 보드게임을 꺼내놓으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인생은 주사위 한 번이야. 오늘 이 게임의 승자에게 신규 프로젝트 책임자 자리를 주지." 대표님의 눈빛에는 장난기와 함께 날카로운 관찰력이 번뜩였다. 마케팅팀장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고, 영업부장은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나는 경영지원팀 과장으로서 이 게임의 룰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다. 사실은 나도 승진을 원했지만, 대표님의 지시로 게임 진행자가 된 것이다.
대표님이 주사위를 집어 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주사위를 굴리기 전 살짝 떨렸다. 회의실의 공기는 무거웠고, 에어컨 바람 소리만이 귓가를 스쳤다. 투명한 주사위가 테이블 위를 굴러가며 내는 소리는 마치 운명의 바퀴가 돌아가는 것 같았다. 주사위는 '5'를 보여주며 멈췄다.
"좋아, 다섯 칸 전진이군." 대표님의 말에 나는 그의 말을 움직였다. 그가 도착한 칸에는 '인생의 선택' 카드를 뽑으라는 지시가 있었다. 대표님은 카드 더미에서 한 장을 뽑았고, 잠시 그것을 바라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모든 자산을 잃었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세요." 대표님이 카드를 읽었다. 임원들의 눈에서 희미한 기쁨의 빛이 스쳤다가 사라졌다. 대표님은 담담하게 자신의 말을 처음 위치로 되돌렸다.
게임은 세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영업부장이 승리에 가까워졌다가 함정에 빠졌고, 마케팅팀장은 조심스러운 전략으로 중간에 머물렀다. 인사팀장은 과감한 도전을 했다가 파산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가장 조용히 게임을 진행해온 연구소장이 깜짝 역전승을 거두었다.
"축하합니다, 이 연구소장님." 대표님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새 프로젝트는 당신 것입니다."
임원들이 하나둘 회의실을 떠난 후, 나는 보드게임을 정리하고 있었다. 대표님이 내 옆에 서서 말했다. "과장님, 오늘 게임 진행을 보니 당신에게서 특별한 것을 발견했어요. 게임의 규칙을 명확히 설명하고, 모든 플레이어를 공정하게 대했죠. 리더십의 기본이지요."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대표님이 계속했다. "실은 이 게임은 진짜 테스트였어요. 연구소장의 승리도 미리 계획된 것이 아니었죠. 하지만 당신의 공정함과 침착함이 인상적이었어요. 다음 주부터 신규 사업 기획팀을 맡아주세요."
보드게임을 박스에 넣으면서, 나는 깨달았다. 인생이란 보드게임처럼 누가 이길지 미리 알 수 없지만, 어떻게 게임에 임하느냐가 때로는 승패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대표님의 보드게임은 끝났지만, 내 인생의 새로운 게임은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