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나는 죽어갔다. 수만 명의 팬들이 내 이름을 외치는 순간, 내 진짜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졌다.
스타디움은 내 이름을 연호하는 함성으로 가득 찼다. "지우! 지우!" 귓가를 울리는 함성 속에서 나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형광색 응원봉이 만들어내는 바다 위에서, 완벽한 안무를 위해 숨을 고르는 순간, 무대 구석에 서 있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스태프 목걸이를 한 채 조명 스위치를 조정하던 소율. 그녀만이 알고 있었다. 아이돌 지우가 아닌, 그냥 '민지우'를 말이다.
"오늘도 완벽했어요." 공연이 끝나고 분장실로 돌아왔을 때, 소율이 물병을 건네며 말했다. 아무도 없는 이 짧은 순간만큼은 가면을 벗을 수 있었다. "완벽하지 않았어. 세 번째 구간에서 템포를 놓칠 뻔했거든." 내가 웃으며 말했다.
소율은 조명 감독 보조로 내 공연을 따라다닌 지 6개월째였다. 남들이 보는 화려한 무대 뒤에서, 그녀만이 내가 얼마나 지쳐있는지 알아챘다. 완벽한 아이돌의 이미지를 위해 로맨스는 금지되었고, 사생활은 회사의 자산이 되었다. 그런데도 소율과의 순간만큼은 진짜 나로 존재할 수 있었다.
"지우 씨, 다음 주에 제 계약이 끝나요." 소율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심장이 무너져 내렸다. "다른 팀으로 가는 거야?"
"아니요. 저... 사진작가 되려고요. 늘 꿈꿔왔던 일이에요."
그녀의 눈에서 자유를 보았다. 내게는 없는 것.
그날 밤, 소율에게 문자를 보냈다. '함께 사라질래?' 미친 제안이었다. 세계적인 아이돌이 모든 것을 버린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소율의 답장은 단순했다. '언제?' 그리고 우리는 계획을 세웠다.
마지막 콘서트, 나는 무대 위에서 평소와 다른 말을 꺼냈다. "오늘까지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팬들은 이것이 투어의 마지막이라는 의미로만 받아들였다. 조명이 꺼지는 순간, 소율이 기다리고 있던 비상구로 뛰어갔다. 미리 준비한 가발과 평범한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는 수많은 로맨스 소설에서나 볼 법한 일을 실행했다.
그로부터 1년, 작은 해변 마을의 사진관에서 우리는 새 삶을 살고 있다. 소율은 그녀의 사진으로, 나는 노래 교실을 열어 아이들을 가르치며. 간혹 텔레비전에서 "미스터리하게 사라진 아이돌 지우"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면, 우리는 웃으며 채널을 돌린다.
오늘, 해변에서 소율이 내 사진을 찍으며 물었다. "후회해?" 나는 모래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대답했다. "로맨스 소설보다 더 행복한 결말을 살고 있는데, 무엇을 후회하겠어?" 멀리서 누군가 내 모습을 알아본 듯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소율의 손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우리의 웃음소리가 파도 소리에 섞여 사라졌다. 이것이 진짜 로맨스였다 - 카메라 앞이 아닌, 현실에서의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