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양이 무너져 내리던 날, 나는 5년 만에 그 사람을 다시 만났다. 회사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 중에 섞인 그의 향수 냄새가 나를 정확히 과거로 데려갔다. 나의 첫 직장, 그리고 내 첫 실패의 현장으로.
"민지 씨, 오랜만이네요." 윤 대표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그 특유의 부드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눈가에는 주름이 깊게 패어 있었고, 한때 검은 머리카락에는 서리가 내려앉았다. 내 손을 잡는 그의 손은 따뜻했지만, 내 가슴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회의실로 안내받으며 나는 과거를 되짚었다. 5년 전, 내가 기획한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나고 회사를 떠날 때, 윤 대표님은 나에게 "언젠가 다시 함께 일하자"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빈 약속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제 그는 나를 새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자로 영입하기 위해 직접 연락해 왔다.
"왜 하필 저인가요?" 내 질문에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40층 높이에서 내려다본 서울은 무수한 빛의 점들로 이루어진 별자리 같았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만이 성공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요. 당신의 그 프로젝트는 실패한 게 아니었어요. 시기가 맞지 않았을 뿐."
테이블 위에 놓인 태블릿을 밀어주는 그의 손가락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화면을 보는 순간 내 심장이 멈춘 듯했다. 내가 5년 전에 기획했던 바로 그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몇 가지 수정이 가해진 채.
"이건..." 내 목소리가 떨렸다.
"네, 민지 씨가 떠난 후에도 계속 이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왔어요. 당신의 이름을 지우지 않고요."
스크롤을 내리자 모든 문서 하단에 내 이름이 공동 기획자로 남아있었다. 뭉클함이 목구멍을 막았다.
"왜요?" 겨우 한 마디를 짜냈다.
그가 의자에 깊이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대표는 자신이 놓친 인재가 있어요. 당신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후회였습니다."
창밖의 도시가 반짝이는 동안, 우리 사이에는 5년의 시간이 물결처럼 흘렀다. 그의 고백이 내 마음속 얼음을 천천히 녹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나는 태블릿을 들어 그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제가 실패하지 않게 도와주실 거죠, 대표님?"
그의 미소에서 안도와 기대가 섞인 감정이 읽혔다. 우리의 손이 태블릿 위에서 스치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재회는 다른 사람과의 만남이 아니라, 과거의 실패를 딛고 일어선 자신과의 재회일지도 모른다는 것을.